2022년 2월, 부산 영도구 여러 곳에 ‘이 벽화를 지워도 되겠습니까?’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작가의 작품인 벽화 위에 걸린 현수막에 무례함에 사람들이 분노를 표할 때,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공간을 벽화로 덮은 무례함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왔다.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사라진 공공미술의 현실’이 ‘벽화를 가린 현수막’을 통해서 시작된 순간이자, 공공미술 사업의 대표적 테마가 되어버린 벽화에 대한 용기 있는 첫 번째 질문이었다.
김천도 타 도시와 마찬가지로 많은 벽화가 있고, 다양한 장소에 벽화를 사용해 도시를 꾸미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KTX고속열차의 선로를 받치고 있는 거대한 교각에 있는 벽화이다. 그 당시 김천시에서 정부와 관계 기관에 강하게 요구해 그려진 이 벽화는 회색의 삭막한 콘크리트를 대신해 김천을 대표하는 벽화로 시민의 눈을 자연스럽고 선명하게 채우고 있다.
이처럼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장소와의 조화, 주민의 삶, 전문가들의 의견, 작가의 작품성이 모두 조화되어 작품이 점유하는 공간이 아닌, 공공의 영역 속에 자리한 작품이 되어야만 성공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사랑받고 도시를 대표하는 예술로 인정받는 어려운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김천의 문화를 대표하는 건물인 김천문화예술회관의 좌우측 외벽에 그려진 남자와 여자의 커다란 얼굴은 어떠한 공공성을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이 벽화를 이곳에 그리자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공연을 보러 예술회관을 찾아온 시민, 스포츠타운으로 가며 지나치는 시민, 이 동네에 평생을 살아온 시민들을 생각한 적이 있는지도 묻고 싶다.
자신만의 예술성을 뽐내는 벽화, 시민과 대화하지 않는 예술이 김천 문화를 대표하는 외벽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조급하게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주민 참여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져서도 안 된다. 과정이 일방적이지 않고, 더디지만 절차를 갖추고, 시민의 삶과 대화하며, 공간을 점유하지 않고 공존하는 공공미술이 김천에서 시작되어야 한다.